
장미
모델을 구하지 못한 반 고흐는 파리에 도착한 여름에 거의 30점이나 되는 꽃 그림을 그렸다.
이것이 그에게는 '색의 사용을 위한 습작들'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또한 그가 아무리 사실을
부인할 지라도 반 고흐는 뛰어난 곷 그림을 그린 화가이다.
꽃들의 색채는 그를 매료시켰고 피었다가 덧없이 지는 모습은 일종의 도발과도 같았다.
"꽃이란 정밀하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색의 터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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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
1889년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도착한 반 고흐는 붓꽃과 라일락을 소재로 연작을 그렸다.
생폴 드 모솔 정신병원의 정원에 있는
꽃이 활짝 핀 화단을 무성한 초목처럼 묘사하면서
캔버스를 다르게 채색된 영역으로 나누었다.
<붓꽃Les Iris<은 앵데팡당전에서의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그 후 1890년 5월 끔찍한 발작에서 회복 됐을 때,
빈센트는 왕성한 창작열에 불타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이 시기의 문을 연 것이 바로 정물화였다.
같은 시기에 그려진 듯한 장미 그림들도 캔버스를 수평으로 나누고 있다는 점에서
수평선과 수직선 형태의 유사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들은 벨벳처럼 부드러운 꽃잎의 물결과 잎들의
뻣뻣한 조직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빈센트가 보색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음을 보여준다.
<출처 :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 창해 ABC북 (반 고흐)>
psyche say
"보통 고흐라고 하면 초상화, 해바라기, 기이한 터치를 떠올린다.
그리고 왠지 가까이 두기에는 두려운 그림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중들이 대부분 감동을 받는 해바라기처럼
그의 작품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많다.
꽃을 많이 그리기로 유명한 화가 중에 고흐도 동참한다.
하지만 왠지 모르는 분위기에 압도되서 사람들은
고흐를 그저 괴짜 화가로 여긴다.
고흐의 꽃은 정말 볼만한게 많다.
꼭 검색 혹은 서적을 통해 당신도 감동을 받기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고흐 전시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신문에서 그 기사를 읽고 가슴이 두근두근.
크윽...
전시회 비용보다
여기서 거기까지 언제 지하철 타고 가냐.에 좌절.
귀차니즘이 판치는 여름입니다.

번민에 휩싸인 나는 나 자신보다 더 위대한 어떤 존재 없이는 살 수 없다. 내 삶 자체라 할 수도 있을 그것은 바로 창조하는 힘..이다. 음악에서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어떤 것을 나는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싶다.
고흐의 수채화는 유화와 다른 치밀함이 있다.
그 치밀함 속에 또렷히 묻어나 있는 솔직함은 인간을 향한 위로였다.

| 운명은 가혹했다. 그러나 영광은 계속된다. 반 고흐는 8년 동안 그림을 그렸다. 그는 경멸당했고 조롱받았으며 몰이해의 차가운 시선 속으로 던져졌다.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응시했고 깨달았다. 그리고 그림은 그를 응시했다. 자화상에서 그는 인간을 좇았고 몰아붙였다. 자신을 던져버린 순간, 그는 비로소 자신을 되찾았음을 깨달았다. 빈센트는 살아있음을 확신했고, 순수한 감성의 덩어리 속에서 희망을 그렸다. 쇄도하는 빛에 흔들리지 않는 그의 두 눈은 무언가를 확신하는 것 같았다. ·· 화가는 '인간'을 그렸다. 그리하여 그가 그린 자화상의 이면에는 운명을 향한 비극적이고 보잘것없으며 피할 수 없는 여정이 담기게 되었다. - 반 고흐(시공디스커버리) |

selt potrait with a pipe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어떤 이는 고갱때문에 온 상처라고 하는데, 나는 전자를 믿고 있다.
열정으로 솔직한 그림을 그린 고흐를 사랑하는 나만의 이미지메이킹이라고 해야하나.
붉은 빛으로 물들인 배경에서 고흐의 마음이 읽혀지는 그림이다.
그림속 그의 눈빛을 정면으로 응시하다보면
풀어진 쌍꺼풀 안으로 애잔함이 있다.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 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반복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 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였다면 그곳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
처음부터 쉽지 않아서.
선택한거야.
돌아가라는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











